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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10

《혈룡기》 제10화 – 죽음보다 가까운 숨결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감정의 접촉. 무림맹 제3도서각.어둡고 눅눅한 공기 속에청류는 홀로 서 있었다.맹주가 비밀리에 보관한 고문서를 확인하라는 지시,그건 명령이기도 했고…어쩌면 감시이기도 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지난밤, 무린의 방 앞에서무언가가 '넘어갔다'는 걸.그리고 자신은…그 선을 넘지 못했다. 문서를 넘기던 순간,그녀의 등 뒤에서‘슥’ 소리가 났다.그리고──공기가 달라졌다.암기다. 몸이 반사적으로 튕겨졌다.그녀의 어깨를 스쳐간 작은 바늘 하나.그 순간,또 다른 그림자가 벽 너머에서 튀어나왔다.칼이 빠르게 목을 노렸다.청류가 검을 뽑았다.단칼.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세 명.아니, 네 명. “쯧.역시 혼자 보낸 건 실수였지.”그 목소리는──무린이었다.창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아무 무기도 없이.. 2025. 9. 29.
《혈룡기》 제8화 – 대련, 검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검을 들고 처음으로, 너를 마주 본다. 무림맹 본관 뒷편의 청운장.맹주의 직계 제자들과정파 문파의 차세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오늘은 공식 대련일.승부보단 경쟁의 줄 세우기,무공보다 정치적 인맥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무림맹 연무장 한편에 낯선 검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머리는 풀어헤쳐졌고,흰 도포 아래 검은 무명복을 입었다.낯선 얼굴.낯선 기운.하지만, 시선은 선명했다.“누구지 저 자는?”“명부엔 없는데…” 맹주가 나서기 전에,한 여인이 먼저 나섰다.청류.푸른 인장을 단 그녀는검을 꺼내들며 말한다.“초대받지 않은 이라면,검으로 증명하라.”그녀의 눈은 차갑지만,그 안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하인의 옷을 입고 나를 보던 그 눈동자.그리고 지금──그가 다시 나타났다. “검을 받아라, 무명객.. 2025. 9. 29.
《혈룡기》 제7화 – 빙심의 문, 금강의 숨결 ──몸은 얼어붙었지만, 심장은 깨어났다. “넌 이 문을 열 자격이 없다.”비석은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비석엔 글씨 하나.[血爲鍵, 念爲鎖]피가 열쇠요, 마음이 자물쇠다.그는 손가락을 베어피를 그 문 위에 문질렀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나는 누구인가.’ 그러자──지하에서 바람이 일었다.불이 없는데도,동굴 안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문이 열렸다.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한 걸음, 또 한 걸음.무린은 맨몸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몸이 얼었다.피부가 갈라졌다.숨이 텁텁하게 엉겨 붙었다.그런데도──그는 멈추지 않았다.이건 단지 무공서가 아니다.이건, 나를 증명하는 마지막 길이다. 그 중심에,**빙정석(氷晶石)**이 떠 있었다.그 속에 새겨진 한 권의 책.표지는 검고,글씨는 서릿발 같았.. 2025. 9. 29.
[외전] 화란 – 붉게 피어난 독화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그리고 화란의 눈에도… 감정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무림맹의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아래엔 천무린과 청류.두 사람은 나란히 검을 쥐고 있었다.서로를 향해 웃으며,한 치의 거리 없이 마주 서 있었다.그 장면은──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검을 그렇게 가까이 겨누면… 숨결까지 닿지."화란은 중얼이며 술잔을 비웠다.하지만 쓴 건 술이 아니라,씹히지 않은 질투였다.그녀는 참으려 했다.애써 웃으려 했다.그저 흔한 장면이라고,그가 나를 안았던 밤을 기억하자고,마음을 되뇌었다.하지만──그녀는 ‘한 번’ 키스를 받았고,청류는 매일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밤.화란은 검은 옷을 걸치고,무림맹의 무고한 사제 하나를 끌어냈다.“……화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2025. 9. 29.
[화란 외전] 입맞춤 뒤, 남은 온도 ──키스는 짧았다. 하지만 지금도 떨리고 있다. …심장이, 이상해.분명 나는 그를 유혹하러 간 거였어.죽여도 좋다고, 안겨도 좋다고,그렇게 스스로를 내던졌을 뿐인데──그가 나를 안았다.그리고… 입을 맞췄다. 짧았지.정말… 짧았어.하지만 너무 깊었어.내 혀가 닿지도 않았는데,내 안쪽까지 전부 다 흔들려 버렸어. 그의 손,차가웠는데…그 순간만큼은 불 같았어.어깨를 감싸던 그 손,가슴에 닿은 그 숨결,그리고 내 입술 위로 무겁게 내려앉던 그 사람의 침묵──…나를 안아도 돼. 대신 이름은 부르지 마. 그랬던 내가…지금은 그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부르고 있어.무린.무린.무린… 입에 담을수록숨이 가빠져. 그 남자…참 나빠.날 안고도,아무 말도 안 했어.내게 입 맞추고도,다시 날 멀리 두려고 해.그 눈빛…날 안.. 2025. 9. 29.
《혈룡기》 제4화 – 천룡세가, 그리고 바꿔치기 ──돌아갈 곳이 없다면, 무너뜨릴 이유는 충분하다. 남강성 청화현, 천룡세가.사람들은 말했다.“천룡세가는 예의를 중시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무림맹의 중심이자 의협의 상징이다.”거짓이었다.무린이 본 것은,높은 담벼락과 그 안에 세워진 권위와 오만뿐이었다. 무린은 걸었다.천룡세가의 대문 앞.벗겨진 짚신, 피가 말라붙은 손등,그리고 등에 멘 검.지나는 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어떤 이는 무시했고,어떤 이는 경계했다.하지만 그는 그 눈빛 하나하나를 기억했다.이 자들이…언젠가 내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누구냐.”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물었다.무린은 고개를 들었다.“이 집의 어른을 만나고 싶다.”“하하, 허름한 떠돌이 하나가 당주를 찾는다고?”수문장이 코웃음을 쳤다.무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이 집의..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