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감정의 접촉.
무림맹 제3도서각.
어둡고 눅눅한 공기 속에
청류는 홀로 서 있었다.
맹주가 비밀리에 보관한 고문서를 확인하라는 지시,
그건 명령이기도 했고…
어쩌면 감시이기도 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난밤, 무린의 방 앞에서
무언가가 '넘어갔다'는 걸.
그리고 자신은…
그 선을 넘지 못했다.
문서를 넘기던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슥’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공기가 달라졌다.
암기다.
몸이 반사적으로 튕겨졌다.
그녀의 어깨를 스쳐간 작은 바늘 하나.
그 순간,
또 다른 그림자가 벽 너머에서 튀어나왔다.
칼이 빠르게 목을 노렸다.
청류가 검을 뽑았다.
단칼.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세 명.
아니, 네 명.
“쯧.
역시 혼자 보낸 건 실수였지.”
그 목소리는──
무린이었다.
창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
아무 무기도 없이,
그저 손에 작은 금속 단검 하나만 들고 있었다.
그 순간,
청류의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였다.
왜… 왜 지금 네가 오는 거야.
그는 순식간에 한 명의 손목을 꺾고
다른 한 명의 목을 찔렀다.
단검이 아닌,
손날로.
그가 수련한 ‘금강빙심경’은
무기를 넘어선
기운 자체로 적을 무너뜨렸다.
청류는 그 사이
마지막 한 명과 검을 겨루었다.
숨소리.
피부 위로 맺힌 땀.
검이 부딪칠 때마다
온몸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균형이 깨졌다.
그녀의 뒤,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또 하나의 암기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청류!”
무린이 그녀를 밀쳐냈다.
자신의 등을 내주고.
피가 흘렀다.
얇은 바늘이 그의 어깨에 깊이 박혔다.
청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안았다.
“왜… 왜 너까지!”
무린은 웃었다.
“기왕 밤을 함께한 여잔데,
등은 보여줘야지.”
그녀의 손이 그의 상처 위를 덮었다.
손이 떨렸다.
그건 분노였고,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이었다.
무린의 숨결이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네가 다치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청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술을 닫았다.
그의 입술 위에.
짧은 순간.
하지만 분명히,
입맞춤이었다.
그들의 숨결이 엉켰다.
무린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도서각 안,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가 되어 흔들렸다.
한참이 흐른 뒤.
청류가 입술을 떼며 말했다.
“화란에게 말하지 마.”
“응.”
“…나중엔,
더 깊게 할 거야.”
밖에선
맹주가 암살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도서각 안,
한 남자와 여자는
피와 입맞춤,
검과 심장 사이에서
서로를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검보다 먼저 닿은 건 입술이었다.
그리고 그 입술은… 불보다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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