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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6

[외전] 화란 – 붉게 피어난 독화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그리고 화란의 눈에도… 감정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무림맹의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아래엔 천무린과 청류.두 사람은 나란히 검을 쥐고 있었다.서로를 향해 웃으며,한 치의 거리 없이 마주 서 있었다.그 장면은──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검을 그렇게 가까이 겨누면… 숨결까지 닿지."화란은 중얼이며 술잔을 비웠다.하지만 쓴 건 술이 아니라,씹히지 않은 질투였다.그녀는 참으려 했다.애써 웃으려 했다.그저 흔한 장면이라고,그가 나를 안았던 밤을 기억하자고,마음을 되뇌었다.하지만──그녀는 ‘한 번’ 키스를 받았고,청류는 매일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밤.화란은 검은 옷을 걸치고,무림맹의 무고한 사제 하나를 끌어냈다.“……화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2025. 9. 29.
《혈룡기》 제6화 – 사파의 붉은 꽃 ──질투는 독이다. 하지만 달콤하다. 달빛은 흐렸고, 바람은 뜨거웠다.무림맹 연회가 끝난 지 사흘째 되는 밤.천무린은 산 속 폐관에 머물고 있었다.외부와 단절된 곳.숨은 고수를 찾기 위함도, 수련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그는 단지 피하고 싶었다.청류의 눈.그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냉정하고, 맑고,하지만 어딘가 갈라져 있던 시선.그 시선이…그의 심장을 스친 후부터, 무언가 흔들리기 시작했었다. 그러나,그가 머물고 있는 산장에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나뭇잎을 스치는 가벼운 발소리.향긋한 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그리고… 화란. 그녀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열쇠도 필요 없었다.이 남자가 문을 잠글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방 안에는 불빛 하나,그 빛 아래 앉아 있던 무린의 등 뒤에 그녀는 서.. 2025. 9. 29.
[외전] 청류 – 검보다 날 선 시선 ──심장은 흔들렸지만, 눈은 부정하고 있었다. 무림맹 연회.정파와 사파, 황실의 그림자까지 드리우는연중 단 한 번의 무림 공정(公正)의 밤.여기 모인 자들은 전부 고위 가문, 대문파의 후계자들이었다.검이 아닌 피로 증명되는 자리.명분보다 배경과 정치력이 더 중요한 밤. 그날 밤,청류는 하늘색 옥갑(玉甲)을 걸치고 등장했다.정갈한 검은 머리를 높게 묶고, 정파 3대 무공 중 하나인 '청명류풍검법'의 상징인 푸른 인장을 달고 있었다.눈빛은 차가웠고,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맹주의 딸이다.”사람들이 속삭였다.“청류 소협이래.” 연회장 뒤편,하인처럼 검은 옷을 걸치고 벽을 등지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천무린.그는 이름을 숨기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숨어 있었다.손엔 잔이 들려 있었고,눈은 연회장 중앙을 조.. 2025. 9. 29.
[외전] 화란 – 칼날 위 입술 ──칼보다 날카로운 건, 여자의 입술이다. 비가 내렸다.창문 틈으로 스며든 물비린내.세상은 젖었고, 무림은 조용했다.무린은 홀로 앉아 있었다.구천객잔.낡은 목재 의자, 삐걱거리는 천장, 식지 않은 술 한 사발.그는 취하지 않았다.술은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머리까지 닿지 않았다.머릿속은 아직… 천룡세가의 대문 앞에 있었다.“적장자? 웃기지 마라.” 그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돌.피.자존심.그의 이마엔 아직 상처가 남아 있었고,그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그때,문이 열렸다.바람처럼.아무 소리도 없이.그리고 그 문턱을 넘어선 건… 화란.검은 우비, 붉은 허리끈.머리는 젖었고, 눈은 젖지 않았다.“또 혼자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그 속엔 짓궂음과 연민, 갈증이 섞여 있었다.무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2025. 9. 29.
《혈룡기》 제4화 – 천룡세가, 그리고 바꿔치기 ──돌아갈 곳이 없다면, 무너뜨릴 이유는 충분하다. 남강성 청화현, 천룡세가.사람들은 말했다.“천룡세가는 예의를 중시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무림맹의 중심이자 의협의 상징이다.”거짓이었다.무린이 본 것은,높은 담벼락과 그 안에 세워진 권위와 오만뿐이었다. 무린은 걸었다.천룡세가의 대문 앞.벗겨진 짚신, 피가 말라붙은 손등,그리고 등에 멘 검.지나는 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어떤 이는 무시했고,어떤 이는 경계했다.하지만 그는 그 눈빛 하나하나를 기억했다.이 자들이…언젠가 내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누구냐.”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물었다.무린은 고개를 들었다.“이 집의 어른을 만나고 싶다.”“하하, 허름한 떠돌이 하나가 당주를 찾는다고?”수문장이 코웃음을 쳤다.무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이 집의.. 2025. 9. 29.
[외전] 화란 – 붉은 실, 검은 손끝 ──사랑이란 말은 쓰지 않아도, 피부는 먼저 반응한다. 불빛은 낮고, 바람은 서늘했다.화란은 그 바람 위에서 춤을 추듯 걸었다.삼정객주가 불타던 날, 그녀는 불길의 흔적만 보고도 그 남자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천무린.원래 이름이든, 지금의 이름이든,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검과 피와… 버려진 짐승의 냄새.그리고…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남자였다.그날 밤,그녀는 그가 몸을 숨긴 폐가 안에 들어섰다.문은 잠기지 않았다.그는 검을 품은 채, 벽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후후…”화란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그의 숨소리는 얕고, 땀 냄새는 진했다.사내가 전투 직후 흘린 냄새는 언제나 진하다.공포, 아드레날린, 그리고 피.그 모든 게 한데 섞여, 그녀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