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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류5

외전 – “너는 나를 택했다” ──화란, 그 밤의 끝에서 속삭이다. 밤이 깊었다.촉불은 이미 꺼졌고,달빛만이 덩그러니 방 안을 덮고 있었다.화란은 무린의 품에 안겨,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규칙적이면서도 미세하게 떨리는 맥박.그 안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를 바랐다. “너는 나를 택했다.”화란은 조용히 속삭였다.무린은 잠들어 있었고,그녀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품은 따뜻했다.하지만 그보다 뜨거웠던 건──그녀의 심장이었다. 처음 입을 맞췄을 때,나는 너의 심장이 멈춘 줄 알았어.하지만 오늘 밤…너는 끝내 내게 너를 맡겼지.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헝클어진 이불 사이에서자신의 속살을 매만지며 거울을 바라봤다.붉게 달아오른 목덜미,어깨에 남겨진 입술 자국.그건 증표야.내가 널 꺾었고, 너는 무너졌다는 증표. “청류는.. 2025. 10. 8.
《혈룡기》 제10화 – 죽음보다 가까운 숨결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감정의 접촉. 무림맹 제3도서각.어둡고 눅눅한 공기 속에청류는 홀로 서 있었다.맹주가 비밀리에 보관한 고문서를 확인하라는 지시,그건 명령이기도 했고…어쩌면 감시이기도 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지난밤, 무린의 방 앞에서무언가가 '넘어갔다'는 걸.그리고 자신은…그 선을 넘지 못했다. 문서를 넘기던 순간,그녀의 등 뒤에서‘슥’ 소리가 났다.그리고──공기가 달라졌다.암기다. 몸이 반사적으로 튕겨졌다.그녀의 어깨를 스쳐간 작은 바늘 하나.그 순간,또 다른 그림자가 벽 너머에서 튀어나왔다.칼이 빠르게 목을 노렸다.청류가 검을 뽑았다.단칼.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세 명.아니, 네 명. “쯧.역시 혼자 보낸 건 실수였지.”그 목소리는──무린이었다.창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아무 무기도 없이.. 2025. 9. 29.
《혈룡기》 제8화 – 대련, 검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검을 들고 처음으로, 너를 마주 본다. 무림맹 본관 뒷편의 청운장.맹주의 직계 제자들과정파 문파의 차세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오늘은 공식 대련일.승부보단 경쟁의 줄 세우기,무공보다 정치적 인맥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무림맹 연무장 한편에 낯선 검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머리는 풀어헤쳐졌고,흰 도포 아래 검은 무명복을 입었다.낯선 얼굴.낯선 기운.하지만, 시선은 선명했다.“누구지 저 자는?”“명부엔 없는데…” 맹주가 나서기 전에,한 여인이 먼저 나섰다.청류.푸른 인장을 단 그녀는검을 꺼내들며 말한다.“초대받지 않은 이라면,검으로 증명하라.”그녀의 눈은 차갑지만,그 안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하인의 옷을 입고 나를 보던 그 눈동자.그리고 지금──그가 다시 나타났다. “검을 받아라, 무명객.. 2025. 9. 29.
[외전] 화란 – 붉게 피어난 독화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그리고 화란의 눈에도… 감정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무림맹의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아래엔 천무린과 청류.두 사람은 나란히 검을 쥐고 있었다.서로를 향해 웃으며,한 치의 거리 없이 마주 서 있었다.그 장면은──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검을 그렇게 가까이 겨누면… 숨결까지 닿지."화란은 중얼이며 술잔을 비웠다.하지만 쓴 건 술이 아니라,씹히지 않은 질투였다.그녀는 참으려 했다.애써 웃으려 했다.그저 흔한 장면이라고,그가 나를 안았던 밤을 기억하자고,마음을 되뇌었다.하지만──그녀는 ‘한 번’ 키스를 받았고,청류는 매일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밤.화란은 검은 옷을 걸치고,무림맹의 무고한 사제 하나를 끌어냈다.“……화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2025. 9. 29.
[외전] 청류 – 검보다 날 선 시선 ──심장은 흔들렸지만, 눈은 부정하고 있었다. 무림맹 연회.정파와 사파, 황실의 그림자까지 드리우는연중 단 한 번의 무림 공정(公正)의 밤.여기 모인 자들은 전부 고위 가문, 대문파의 후계자들이었다.검이 아닌 피로 증명되는 자리.명분보다 배경과 정치력이 더 중요한 밤. 그날 밤,청류는 하늘색 옥갑(玉甲)을 걸치고 등장했다.정갈한 검은 머리를 높게 묶고, 정파 3대 무공 중 하나인 '청명류풍검법'의 상징인 푸른 인장을 달고 있었다.눈빛은 차가웠고,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맹주의 딸이다.”사람들이 속삭였다.“청류 소협이래.” 연회장 뒤편,하인처럼 검은 옷을 걸치고 벽을 등지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천무린.그는 이름을 숨기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숨어 있었다.손엔 잔이 들려 있었고,눈은 연회장 중앙을 조..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