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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

《혈룡기》 제8화 – 대련, 검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by WhateverYouDo 2025. 9. 29.

 

──검을 들고 처음으로, 너를 마주 본다.

 

무림맹 본관 뒷편의 청운장.

맹주의 직계 제자들과
정파 문파의 차세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은 공식 대련일.

승부보단 경쟁의 줄 세우기,
무공보다 정치적 인맥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
무림맹 연무장 한편에 낯선 검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풀어헤쳐졌고,
흰 도포 아래 검은 무명복을 입었다.

낯선 얼굴.
낯선 기운.
하지만, 시선은 선명했다.

“누구지 저 자는?”

“명부엔 없는데…”

 

맹주가 나서기 전에,
한 여인이 먼저 나섰다.

청류.

푸른 인장을 단 그녀는
검을 꺼내들며 말한다.

“초대받지 않은 이라면,
검으로 증명하라.”

그녀의 눈은 차갑지만,
그 안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

하인의 옷을 입고 나를 보던 그 눈동자.
그리고 지금──
그가 다시 나타났다.

 

“검을 받아라, 무명객.”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칼집에서 검을 꺼냈다.

바람이 멈췄다.
먼지가 일었다.
청류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저건, 단순한 검이 아니다.
저건… 깨달은 자의 검이다.

 

“받지.
이름 없는 검으로,
너를 시험하겠다.”

 

청류가 먼저 움직였다.

파르르,
그녀의 검끝이 바람을 가르며 찔러들어왔다.

[청명류풍검법 – 서설(序雪)]

첫 찌르기,
숨결처럼 빠르고 매섭다.

무린은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엔 움직임만 있었고,
검끝은 고요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찌르기.

청류의 검이 흩날리는 설풍처럼 몰아쳤다.

[청명류풍검법 – 연쇄참(連鎖斬)]

그러나──

무린은 정면으로 받아쳤다.

짧은 칼끝,
단 한 번의 각도 회전으로
청류의 검을 틀어막았다.

찰칵.
검끝이 스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청류는 처음으로 ‘수세’에 몰렸다.

 

"그 검법,
가르친 자가 누구지?"

청류가 물었다.

무린은 짧게 답했다.

“내 피다.”

“…피?”

“너처럼 깨끗한 건 아냐.
하지만… 끓어오른다.”

 

다시 검이 부딪혔다.

이번엔 청류가 물러섰다.
뒷꿈치가 반보 밀려났다.

관중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저 자는 누구냐!”
“청류 소협과 대등하게 싸운다!”
“새로운 세력인가?”

 

결국 맹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물었다.

“무명객, 이름을 밝히라.”

그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천무린.”

청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맹주도 놀랐다.

“…그 이름, 가주가 몰락한 ‘천가’의──”

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버려졌고, 지워졌고,
지금은 돌아왔다.”

 

그날,
천무린은 대련장을 떠나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청류는──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검은 아직… 서로를 겨누고 있다.

 

그날 밤,
청류는 홀로 수련장을 찾았다.

검을 빼들고,
그와의 대련을 떠올렸다.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심장은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떨림은
‘질투’인지,
‘설렘’인지,
‘경계심’인지…
그녀 스스로도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