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독이 되고, 질투는 불이 된다.
무림맹의 후정.
홍등이 바람에 흔들릴 무렵,
화란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붉은 술이 담긴 잔을 기울이며,
그녀는 무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눈빛.
그 입술.
그리고──
그의 몸에 남아 있던 청류의 향기.
“입을 맞췄다더군.”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 말투, 그리고 분위기.
여자는 안다.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무언가’를 나눴을 때를.
화란은 피식 웃었다.
“나보다 먼저 했다고 해서
더 깊었다는 보장은 없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고름을 단단히 매고,
가슴 앞에 두른 얇은 비단을 풀어내며 중얼거렸다.
“좋아, 무린.
오늘…
내가 어떤 여잔지 보여줄게.”
그날 밤.
무린은 청류의 치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어깨는 여전히 붉게 부어 있었지만
청류의 눈동자가 잊히질 않았다.
문을 열자──
향이 달라졌다.
방 안엔 은은한 연기가 깔려 있었고,
촛불 대신
홍등 하나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왔구나.”
화란이었다.
그녀는 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술잔을 돌리며.
“화란…?”
“어깨 다쳤다며.”
그녀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무린의 옷깃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정도 상처로 죽진 않겠지?”
무린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화란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더 깊었다.
그 안에는 열기와 분노,
그리고 감춰지지 않는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너…
청류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 해도 돼.”
“…….”
“근데 그 애가 네 입술에 닿은 만큼,
나는 네 심장에 닿을 거야.”
그녀는 무린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의 가슴을 타고 올라온 손,
그 손끝이 목덜미를 훑을 때
무린은 숨을 들이켰다.
화란의 숨결이
그의 귓가에 닿았다.
“네가 먼저 멈추지 않으면…
오늘 밤,
나는 끝까지 갈지도 몰라.”
입술이 닿았다.
이번엔 화란이 먼저였다.
청류와의 첫 키스가
고요하고 조심스러웠다면,
화란은 달랐다.
탐닉이었다.
소유였다.
그녀의 입술은,
그의 마음 깊숙이 쑤셔 넣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
무린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옷깃을 풀고,
가슴팍에 입술이 닿고,
그 입술이 천천히 배 위로 내려올 때까지.
“화란… 그만…”
“그만?
이건 시작도 아니야.”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청류는 못하는 걸
나는 할 수 있어.”
그녀의 손이 무린의 허리에 닿았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날 멈추고 싶으면,
지금 아니면 늦어.”
무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화란은 멈췄다.
“청류?”
무린이 조심스레 묻자,
화란은 피식 웃었다.
“아니야.
그 애는 지금… 나처럼 용기가 없거든.”
그녀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오늘 밤…
이건 시험이야.”
“……무슨 시험.”
“너의 욕망이
내 사랑보다 약한지를 보는 거지.”
그녀는 손을 거뒀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무린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녀가 돌아봤을 때──
그의 눈빛은 이미,
누군가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가지 마.”
“…왜.”
“너 없으면,
오늘 밤은 너무 조용할 것 같아서.”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를 안았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촛불이 꺼진 방 안에서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탐했다.
질투는 불이었고,
사랑은 그 불에 타오르는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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