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의 깃발은 수백이었고, 맞서는 검은 단 두 자루였다.
새벽, 산허리에 북소리가 울렸다.
산새들이 날아올라 흩어졌고,
은거처를 둘러싼 숲은 긴장으로 서늘해졌다.
무린은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빙화염이 고동칠 때마다,
얼음과 불씨가 동시에 번쩍였다.
화란은 창가에 서 있었다.
멀리서 올라오는 수십, 수백의 횃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왔군. 장로회가.”
포위망은 빠르게 좁혀졌다.
깃발마다 ‘정의’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 속엔 욕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앞장선 이는 장로회의 사자단장이었다.
그는 창을 높이 들고 외쳤다.
“천무린!
납혈진을 무너뜨리고, 맹의 질서를 배반한 죄로
그대를 토벌한다!”
뒤를 이은 무인들의 함성이 산을 뒤흔들었다.
화란이 무린을 돌아봤다.
“지금 네 몸으론 감당하기 힘들어.”
무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피할 수 없어.
내가 맹주라 선언했지 않은가.
그 말의 대가는, 지금 치러야 한다.”
그는 검을 뽑았다.
칼끝에 얼음이 맺히고, 불씨가 피어났다.
심쇄의 균열이 낸 힘이 처음으로 전투에 실렸다.
첫 물결이 들이닥쳤다.
창과 검, 수십 개의 무기들이 일제히 휘몰아쳤다.
무린은 숨을 들이켰다.
빙심의 서리와 화란의 불길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콰앙──!
폭발 같은 충격파가 사방을 쓸어냈다.
얼음이 번개처럼 퍼지고,
불길이 그 얼음을 타올라 적들을 태웠다.
첫 물결은 그대로 무너졌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물결이 이어졌다.
화란이 몸을 날려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꽃이 휘몰아쳐 창끝을 부수고,
그녀의 검무가 붉은 꽃잎처럼 터져나갔다.
“무린! 뒤는 맡겨!”
무린은 심호흡을 내쉬며 칼을 휘둘렀다.
심장이 얼어붙는 고통 속에서도,
균열 사이로 번쩍이는 힘이 솟구쳤다.
빙심·염화(炎花).
얼음 위에 불꽃이 피어나
장로 세력의 진형을 갈라놓았다.
그러나 수적 열세는 분명했다.
사자단장은 맹렬히 돌격하며 외쳤다.
“그의 기운은 완전치 않다! 밀어붙여라!”
창끝들이 다시 무린을 삼켰다.
무린은 검으로 겨우겨우 막아내며 피를 토했다.
심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화란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무린! 버텨, 내가 있잖아!”
그녀의 불길이 다시 그의 등을 덮었다.
얼음이 무너지지 않게, 불씨가 꺼지지 않게.
잠시 균형이 깨졌다.
사자단장이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무린의 눈빛이 번쩍였다.
“내 죄를 묻겠다고 했지…
그럼, 내 피로 답하겠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그었다.
피가 공중에 흩날리며 심빙화염과 합쳐졌다.
콰앙──!!
붉고 푸른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포위망이 산산이 찢어지고,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짙은 연기 속에서,
무린은 피투성이로 서 있었다.
칼끝에서 얼음과 불씨가 여전히 타올랐다.
“내 피가 길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이 길 위에서 나는 쇠를 부수고,
무림을 다시 세운다.”
포위망은 일시적으로 무너졌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건 아니었다.
멀리서 다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 큰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화란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부축하며 속삭였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
이제 무림 전역이 너를 적으로 삼을 거야.”
무린은 미소를 지었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뜨겁게 빛났다.
“좋다.
적이 많을수록, 쇠는 더 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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