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의 울림과 심장의 고동이 맞부딪쳤다.
골짜기의 안개가 찢어졌다.
혈후가 걸어 나왔다.
사슬 수십 줄이 그의 몸을 감아 갑옷을 만들었고,
붉은 눈 하나가 무린을 꿰뚫었다.
땅은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그것은 걸음이 아니라 종의 울림이었다.
“명(命): 천무린. 구속(拘束).”
혈후의 목소리는 종소리와 같았다.
듣는 순간, 심장이 스스로 굳어졌다.
무린은 검을 쥐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균열이 커질수록 힘은 세졌지만,
내부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려 했다.
화란이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심장의 박자를 맞춰야 해.
너 혼자선 깨질 거야.”
그녀의 손끝에서 불씨가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뜨겁고 규칙적인 맥박이 그의 고동에 겹쳤다.
혈후가 사슬을 들어올렸다.
사슬마다 작은 종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들이 동시에 울렸다.
째앵—!
공기마저 떨리며,
무린의 심장이 강제로 당겨졌다.
고동이 어긋났다.
핏줄이 터지며 피가 입가로 솟았다.
“크윽…!”
무린이 무릎을 꿇었다.
혈후의 붉은 눈이 차갑게 빛났다.
“쇠는 심장을 묶는다.”
화란이 무릎을 꿇어 무린을 끌어안았다.
“견뎌!
내 불을 네 심장에 새길게.”
그녀의 이마가 그의 가슴에 닿았다.
불길이 문양처럼 새겨졌다.
화염각인.
심장이 뛰는 자리마다 붉은 불꽃이 선명히 박혔다.
불길의 맥이 심장의 울림과 겹치자,
무린의 고동이 다시 박자를 찾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무린이 눈을 떴다.
눈동자에 푸른 서리와 붉은 불꽃이 동시에 일었다.
“쇠가 심장을 묶는다고?
그럼 심장은 불로 다시 울린다.”
그는 칼을 세워 올렸다.
칼끝이 떨리더니, 균열이 번쩍였다.
균열검·역주파.
심장의 고동을 칼끝에 실어
혈후의 종소리와 맞부딪쳤다.
쾅—!
산이 울렸다.
혈후의 종이 일순간 어긋나며 금이 갔다.
혈후가 몸을 비틀었다.
사슬들이 요동쳤다.
깨진 종소리 대신,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불가능하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쇠의 울림이 어긋나다니…”
무린은 피투성이로 웃었다.
“쇠는 완전하지 않아.
심장이, 더 큰 울림이니까.”
혈후가 다시 사슬을 휘둘렀다.
이번엔 단순한 구속이 아니라,
붉은 칼날로 변해 몰아쳤다.
무린과 화란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서리와 불꽃이 뒤엉켜 장막을 만들었다.
칼과 사슬이 그 장막 위에서 충돌하며
수십 번이나 울렸다.
콰광—!
바위가 부서지고, 땅이 갈라졌다.
피와 불, 얼음이 동시에 흩날렸다.
마지막 일격.
무린이 심장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이 맥으로, 쇠를 찢는다.”
화란이 그의 등에 불길을 얹었다.
“내 불로, 끝까지 지탱해줄게.”
두 사람의 맥이 겹쳤다.
심장이 불처럼 울렸고,
칼끝에서 서리와 불씨가 동시에 폭발했다.
균열검·파쇄심(破碎心).
칼이 사슬을 베었다.
쇠가 갈라지고, 종이 산산조각 났다.
혈후의 붉은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몸을 감던 사슬들이 하나둘 풀리며
피안개로 흩어졌다.
혈후는 무릎을 꿇었다.
“심장이… 쇠를 이기다니…”
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꺼져갔다.
전장은 고요해졌다.
사슬은 사라졌지만,
붉은 안개가 여전히 산허리를 덮었다.
무린은 무릎을 짚고 쓰러질 듯 휘청였다.
화란이 급히 부축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바보 같은 사내… 또 심장을 갈아넣었잖아.”
무린은 미소를 지었다.
“쇠가 묶는 건 심장이라 했지…
그럼 심장으로 쇠를 끊는 게 답이야.”
멀리서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풍백현의 웃음이 그 위를 덮었다.
“좋다, 무린.
네 심장이 얼마나 버틸지…
무림 전체가 증명해줄 것이다.”
혈후는 쓰러졌지만,
무림 전역의 종은 멈추지 않았다.
전란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무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외전 – 그의 울림을 곁에서 들으며 (0) | 2026.01.01 |
|---|---|
| 《혈룡기》 제33화 – 종소리의 확산, 무림의 균열 (1) | 2025.12.31 |
| 《혈룡기》 제31화 – 첫 전장, 피로 태어난 자들 (0) | 2025.12.31 |
| 《혈룡기》 제30화 – 쇄의 종이 무림에 울리다 (0) | 2025.12.31 |
| 《혈룡기》 제29화 – 균열에서 피어난 검 (1) | 2025.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