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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

《혈룡기》 제35화 – 쇄의 군의 행진

by WhateverYouDo 2026. 1. 1.

 

심장의 군이 태어나자, 쇠는 군대로 응답했다.

 

납혈진의 심장부.
풍백현은 검은 제단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그 피가 바닥 문양을 타고 사슬처럼 엮였다.

쿵— 쿵—

피와 쇠가 한 박자로 고동쳤다.
그 울림은 무림 전역의 종소리와 합쳐졌다.

풍백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무린, 심장의 군이라 부른다고?
그럼 나는 쇠로써 군을 만들겠다.”

 

붉은 안개 속에서, 병사들이 걸어나왔다.
혈사보다 더 정연한 행진.
혈후보다 더 무거운 기운.

그들은 사슬을 갑옷처럼 두르고,
허리마다 작은 종을 매달았다.
걸음마다 종이 울렸고,
울림은 대열 전체를 하나의 심장처럼 만들었다.

쇄의 군(鎖軍).
풍백현이 만든, 피와 쇠의 군대.

 

각 문파의 장문들도 그 종소리에 굴복했다.
“무린은 반역자다!
쇠의 질서에 따라라!”
그들의 제자와 무인들은 울림에 매혹되어
스스로 쇄의 군에 합류했다.

하루 만에 수백, 이틀 만에 수천.
쇠의 군세가 무림 전역에서 불어나갔다.

풍백현은 제단 위에서 그 행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심장은 제각각이지만,
쇠는 하나다.
그러니 이 군은 부서지지 않는다.”

 

한편, 산능선 너머.
무린의 진영은 초라했다.
낭인과 방외 무인, 몇몇 작은 문파의 제자들.
수는 적었고, 무장은 허술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붉지 않았다.
심장이 스스로 뛰고 있었다.
무린의 울림에 반응하며,
서로의 가슴이 맥으로 이어졌다.

화란은 무린 옆에서 속삭였다.
“우린 아직 적어.
하지만 너의 심장이 그들을 묶고 있어.
쇠가 아닌 뜻으로.”

무린은 검을 들어 보였다.
칼끝에서 얼음과 불꽃이 번졌다.
“수의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다.
쇠의 종에 맞설 울림만 있으면 된다.”

 

이윽고, 두 군이 마주했다.

평원 한가운데,
쇠의 군은 사슬을 늘어뜨리고 진을 쳤다.
사슬이 서로 엮여 바닥에 거대한 문양을 그렸다.
그 자체가 하나의 납혈진이었다.

반대편, 심장의 군은 흩어져 있었으나
무린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들의 심장이 동시에 울렸다.
쿵— 쿵— 쿵—
서로 다른 박자가 하나로 모였다.

쇠의 종과, 심장의 울림.
두 파장이 평원 위에서 맞부딪쳤다.

 

풍백현이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었다.
“좋다.
이제야 무림다워졌다.
쇠와 심장, 어느 쪽이 먼저 찢어질지—
전쟁으로 증명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