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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린18

《혈룡기》 제31화 – 첫 전장, 피로 태어난 자들 쇠가 울리면, 피가 사람의 이름을 지운다. 산능선 아래 골짜기.안개가 낮게 깔렸다.바람은 멈췄다.종소리는 멎지 않았다.무린이 칼을 쥐었다.심장은 여전히 불규칙했다.그러나 균열은 살아 있었다.얼음과 불의 사이, 그 틈.화란이 곁에서 숨을 고르고 속삭였다.“오네.”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불씨가 튀었다.붉은 꽃.금방이라도 피바다로 번질 준비. 먼저 나타난 건 무인들이 아니었다.검은 망토.붉은 눈.피와 쇠로 빚은 혈사(血師).그들은 살갗 대신 쇠사슬을 몸에 감고 있었다.걸을 때마다 종의 잔향이 사슬 사이로 스며들었다.인간의 기척이었으나, 인간의 향이 아니었다.앞선 혈사가 철퇴를 바닥에 끌며 중얼거렸다.“명(命) : 천무린.”목소리는 사람의 것이었지만,입안에서 피가 먼저 울었다. 무린이 한 걸음 나섰다.“먼저 묻겠.. 2025. 12. 31.
《혈룡기》 제30화 – 쇄의 종이 무림에 울리다 전쟁은 한 사람의 반역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쇠를 쥔 자가 종을 울렸을 뿐이다. 풍백현은 납혈진 깊숙한 지하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무린과 화란이 떠난 뒤에도 진은 여전히 붉게 뛰고 있었고,그 붉은 맥은 무림맹의 땅속을 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그는 작은 종 하나를 들어 올렸다.쇠로 된 종, 그러나 그 속엔 수많은 피의 맹세가 담겨 있었다.“때가 왔군.”풍백현이 종을 울렸다. 쿵──낮고 깊은 울림이 납혈진을 타고 퍼졌다.지하의 문양들이 붉게 타올랐다.그리고 그 울림은 곧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무림의 모든 문파로 흘러갔다.종소리를 들은 자들은 모두 같은 환영을 보았다.피에 잠긴 전각,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그리고 그 사슬을 부수려는 검객의 그림자.풍백현의 목소리가 환영을 뚫고 울렸다.“천무린은 무림을 배.. 2025. 12. 31.
《혈룡기》 제29화 – 균열에서 피어난 검 쇠는 아직 풀리지 않았으나, 틈은 이미 무기를 낳았다. 무린과 화란은 깊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뒤에서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장로 세력의 무인들이 여전히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무린은 숨을 고르며 검을 움켜쥐었다.심장이 얼어붙은 듯 아팠지만, 그 안에서 불씨가 끊임없이 타올랐다.심쇄의 균열.그 틈새에서 솟아나는 힘이 있었다. “더는 도망칠 수 없어.”무린이 멈춰섰다.화란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심장이… 무너질 수도 있어.”무린은 고개를 저었다.“지금이 아니면, 이 힘을 다룰 수 없다.쇠를 부수려면, 먼저 균열을 무기가 되게 해야 한다.” 추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수십 명의 무인들이 칼과 창을 들고 산등성이를 뒤덮었다.사자단장이 외쳤다.“반역자 천무린! 이.. 2025. 12. 31.
《혈룡기》 제28화 – 피로 연 길 정파의 깃발은 수백이었고, 맞서는 검은 단 두 자루였다. 새벽, 산허리에 북소리가 울렸다.산새들이 날아올라 흩어졌고,은거처를 둘러싼 숲은 긴장으로 서늘해졌다.무린은 몸을 일으켰다.심장이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그러나 심빙화염이 고동칠 때마다,얼음과 불씨가 동시에 번쩍였다.화란은 창가에 서 있었다.멀리서 올라오는 수십, 수백의 횃불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드디어 왔군. 장로회가.” 포위망은 빠르게 좁혀졌다.깃발마다 ‘정의’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그 속엔 욕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앞장선 이는 장로회의 사자단장이었다.그는 창을 높이 들고 외쳤다.“천무린!납혈진을 무너뜨리고, 맹의 질서를 배반한 죄로그대를 토벌한다!”뒤를 이은 무인들의 함성이 산을 뒤흔들었다. 화란이 무린을 돌아봤다.“지금 네 몸으론 감당하.. 2025. 12. 28.
외전 – 불길 속의 두려움과 열망 사랑은 그를 지키고 싶다는 두려움과, 끝내 내 것이어야 한다는 열망 사이에 있었다. 무린이 내 품에 쓰러졌다.그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동시에 불씨처럼 뜨거웠다.심장이 얼고 타는 고통 속에서 버티다, 결국 의식을 잃은 것이다.나는 그의 뺨을 감싸 쥐었다. 피가 묻어 손끝이 미끄러졌다.그럼에도 손을 뗄 수 없었다.‘혹시… 이대로 멈추면 어떡하지?내 앞에서, 내 손 안에서,그가 사라져 버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나는 수많은 사내들을 봐왔고, 수많은 피를 겪어왔다.그러나 단 한 번도 이렇게 두렵지 않았다.이 사내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무린…”나는 낮게 불렀다.대답은 없었다.그의 입술은 피로 얼룩졌고, 숨결은 희미했다.‘안 돼.너는 내 불길로 살아야 해.내 체온이 널 묶어둬야 해. 나는 그의 가.. 2025. 12. 28.
《혈룡기》 제26화 – 정파의 칼날, 그림자의 후원 검보다 날카로운 것은 정치였다. 무림맹의 아침은 늘 종소리로 시작되었다.그러나 요즘의 종은 기도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분열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울렸다.장로회가 갈라진 지 사흘.찬성과 반대, 지지와 탄핵.맹 안팎의 무인들은 서로 다른 깃발 아래 모여 웅성거렸다. 그날, 장로회 별당에서는 비밀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반(反)무린을 외친 장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문이 닫히자 곧장 불빛이 흔들렸다.“천무린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첫째 장로가 단호히 말했다.“납혈진이 흔들렸을 때 그가 있었다.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사실만으로도 그는 맹을 위협한 반역자다.”둘째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소. 그는 맹주를 자처했지 않은가.이건 도전이 아니라 반란이오.우리가 가만두면 무림의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진다... 2025.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