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은 쇄에 갇혔으나, 마음은 아직 그를 기억했다.
고요했다.
납혈진이 절반 무너졌을 때, 잠시 빛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어둠뿐이었다.
나는 쇠사슬에 묶인 채 무릎 꿇고 있었다.
눈동자에 박힌 안쇄가 여전히 불타고,
심장은 심쇄에 눌려 고동이 느리게 울렸다.
혈맥은 혈쇄에 잠겨, 내공조차 흐르지 않았다.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숨결마저 종소리에 흔들렸다.
풍백현의 발자국은 멀어지고,
화란의 불길은 사라졌다.
남은 건 내 안에 파고든 정적.
그런데도,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청류… 반드시 널 데리러 온다.”
무린의 목소리였다.
그가 떠나며 남긴 마지막 속삭임.
쇠가 내 귀를 막아도,
그 말은 여전히 가슴을 울렸다.
눈을 감았다.
안쇄가 빛을 막아도,
내 안쪽에서 떠오르는 장면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어린 날의 정원.
서툴게 검을 잡던 손.
눈발이 흩날리던 마당에서
그가 불러주던 이름.
짧고, 따뜻한 호명.
그 기억이 있기에,
나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화란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밤은 내가 가졌어.”
“그의 떨림은 내 것이야.”
질투가 피처럼 입술에 맺혔다.
심쇄가 내 가슴을 짓눌러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더 아팠다.
‘정말일까?
그의 떨림은 이제 내 것이 아닌 걸까?’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안쇄가 내 시선을 얼려냈다.
몸이 떨리며,
칼을 쥐는 손이 멋대로 꿈틀거렸다.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혈쇄가 혈맥을 묶고,
심쇄가 심장을 졸라 매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음만은,
끝내 쇄에 완전히 묶이지 않았다.
‘무린…
네가 불러준 이름 때문에 나는 아직 살아 있어.
쇠가 날 조여도,
그 목소리 하나가 나를 붙잡아줘.’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뺨 위에 맺히자마자
얼음처럼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쇄의 인형이었다.
풍백현의 종소리에 춤추는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건 무린의 심장.
그의 서리와 불길이 동시에 부딪히며 내는,
살아 있는 맥박의 소리였다.
“나는… 아직.”
내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쇠에 묶였어도,
내 심장은 너를 기억해.”
청류의 몸은 쇄에 갇혔으나,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무린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가 언젠가,
쇄를 부수는 균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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