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외전] 입맞춤 뒤, 남은 온도
──키스는 짧았다. 하지만 지금도 떨리고 있다. …심장이, 이상해.분명 나는 그를 유혹하러 간 거였어.죽여도 좋다고, 안겨도 좋다고,그렇게 스스로를 내던졌을 뿐인데──그가 나를 안았다.그리고… 입을 맞췄다. 짧았지.정말… 짧았어.하지만 너무 깊었어.내 혀가 닿지도 않았는데,내 안쪽까지 전부 다 흔들려 버렸어. 그의 손,차가웠는데…그 순간만큼은 불 같았어.어깨를 감싸던 그 손,가슴에 닿은 그 숨결,그리고 내 입술 위로 무겁게 내려앉던 그 사람의 침묵──…나를 안아도 돼. 대신 이름은 부르지 마. 그랬던 내가…지금은 그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부르고 있어.무린.무린.무린… 입에 담을수록숨이 가빠져. 그 남자…참 나빠.날 안고도,아무 말도 안 했어.내게 입 맞추고도,다시 날 멀리 두려고 해.그 눈빛…날 안..
2025. 9. 29.
[외전] 화란 – 칼날 위 입술
──칼보다 날카로운 건, 여자의 입술이다. 비가 내렸다.창문 틈으로 스며든 물비린내.세상은 젖었고, 무림은 조용했다.무린은 홀로 앉아 있었다.구천객잔.낡은 목재 의자, 삐걱거리는 천장, 식지 않은 술 한 사발.그는 취하지 않았다.술은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머리까지 닿지 않았다.머릿속은 아직… 천룡세가의 대문 앞에 있었다.“적장자? 웃기지 마라.” 그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돌.피.자존심.그의 이마엔 아직 상처가 남아 있었고,그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그때,문이 열렸다.바람처럼.아무 소리도 없이.그리고 그 문턱을 넘어선 건… 화란.검은 우비, 붉은 허리끈.머리는 젖었고, 눈은 젖지 않았다.“또 혼자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그 속엔 짓궂음과 연민, 갈증이 섞여 있었다.무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2025. 9. 29.
《혈룡기》 제4화 – 천룡세가, 그리고 바꿔치기
──돌아갈 곳이 없다면, 무너뜨릴 이유는 충분하다. 남강성 청화현, 천룡세가.사람들은 말했다.“천룡세가는 예의를 중시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무림맹의 중심이자 의협의 상징이다.”거짓이었다.무린이 본 것은,높은 담벼락과 그 안에 세워진 권위와 오만뿐이었다. 무린은 걸었다.천룡세가의 대문 앞.벗겨진 짚신, 피가 말라붙은 손등,그리고 등에 멘 검.지나는 이들이 그를 쳐다보았다.어떤 이는 무시했고,어떤 이는 경계했다.하지만 그는 그 눈빛 하나하나를 기억했다.이 자들이…언젠가 내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누구냐.”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물었다.무린은 고개를 들었다.“이 집의 어른을 만나고 싶다.”“하하, 허름한 떠돌이 하나가 당주를 찾는다고?”수문장이 코웃음을 쳤다.무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이 집의..
2025. 9. 29.
[외전] 화란 – 붉은 실, 검은 손끝
──사랑이란 말은 쓰지 않아도, 피부는 먼저 반응한다. 불빛은 낮고, 바람은 서늘했다.화란은 그 바람 위에서 춤을 추듯 걸었다.삼정객주가 불타던 날, 그녀는 불길의 흔적만 보고도 그 남자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다.천무린.원래 이름이든, 지금의 이름이든,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검과 피와… 버려진 짐승의 냄새.그리고…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남자였다.그날 밤,그녀는 그가 몸을 숨긴 폐가 안에 들어섰다.문은 잠기지 않았다.그는 검을 품은 채, 벽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후후…”화란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그의 숨소리는 얕고, 땀 냄새는 진했다.사내가 전투 직후 흘린 냄새는 언제나 진하다.공포, 아드레날린, 그리고 피.그 모든 게 한데 섞여, 그녀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