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혈룡기15

《혈룡기》 제12화 – “그 입술, 누구 것이었나요?” ──사랑은 침묵을 버티지 못한다. 무림맹의 회의당.고위 장로들과 각 파문 대표들이 자리를 채우고,중앙에는 무림맹주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긴장된 정적이 흘렀다.그 틈을 깨고문이 열렸다.무린.그리고 그를 따라 들어온 건──화란이었다.청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손엔 차가 식어 있었고,눈동자는 식지 않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무린과 화란은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했지만,청류의 눈엔 그것조차 부질없었다.화란의 입가에 떠오른 미세한 미소.무린의 목 아래로 엿보이는아주 희미한, 붉은 흔적.그 흔적이,청류의 가슴을 쿡 찔렀다.“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이젠 밤까지 함께한 거야?” “맹주님 도착하십니다!”함께 일어서는 사람들 속에서,청류는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무린의 시선과 마주쳤다.그의 눈엔 죄책감.. 2025. 10. 8.
《혈룡기》 제11화 – 소유의 조건, 유혹의 칼날 ──사랑은 독이 되고, 질투는 불이 된다. 무림맹의 후정.홍등이 바람에 흔들릴 무렵,화란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붉은 술이 담긴 잔을 기울이며,그녀는 무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 눈빛.그 입술.그리고──그의 몸에 남아 있던 청류의 향기. “입을 맞췄다더군.”그녀가 낮게 말했다.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하지만 눈빛, 말투, 그리고 분위기.여자는 안다.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무언가’를 나눴을 때를. 화란은 피식 웃었다.“나보다 먼저 했다고 해서더 깊었다는 보장은 없지.”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옷고름을 단단히 매고,가슴 앞에 두른 얇은 비단을 풀어내며 중얼거렸다.“좋아, 무린.오늘…내가 어떤 여잔지 보여줄게.” 그날 밤.무린은 청류의 치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그의 어깨는 여전히 붉게 부어 있었지만.. 2025. 10. 8.
《혈룡기》 제10화 – 죽음보다 가까운 숨결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감정의 접촉. 무림맹 제3도서각.어둡고 눅눅한 공기 속에청류는 홀로 서 있었다.맹주가 비밀리에 보관한 고문서를 확인하라는 지시,그건 명령이기도 했고…어쩌면 감시이기도 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지난밤, 무린의 방 앞에서무언가가 '넘어갔다'는 걸.그리고 자신은…그 선을 넘지 못했다. 문서를 넘기던 순간,그녀의 등 뒤에서‘슥’ 소리가 났다.그리고──공기가 달라졌다.암기다. 몸이 반사적으로 튕겨졌다.그녀의 어깨를 스쳐간 작은 바늘 하나.그 순간,또 다른 그림자가 벽 너머에서 튀어나왔다.칼이 빠르게 목을 노렸다.청류가 검을 뽑았다.단칼.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세 명.아니, 네 명. “쯧.역시 혼자 보낸 건 실수였지.”그 목소리는──무린이었다.창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는아무 무기도 없이.. 2025. 9. 29.
《혈룡기》 제8화 – 대련, 검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검을 들고 처음으로, 너를 마주 본다. 무림맹 본관 뒷편의 청운장.맹주의 직계 제자들과정파 문파의 차세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오늘은 공식 대련일.승부보단 경쟁의 줄 세우기,무공보다 정치적 인맥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무림맹 연무장 한편에 낯선 검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머리는 풀어헤쳐졌고,흰 도포 아래 검은 무명복을 입었다.낯선 얼굴.낯선 기운.하지만, 시선은 선명했다.“누구지 저 자는?”“명부엔 없는데…” 맹주가 나서기 전에,한 여인이 먼저 나섰다.청류.푸른 인장을 단 그녀는검을 꺼내들며 말한다.“초대받지 않은 이라면,검으로 증명하라.”그녀의 눈은 차갑지만,그 안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하인의 옷을 입고 나를 보던 그 눈동자.그리고 지금──그가 다시 나타났다. “검을 받아라, 무명객.. 2025. 9. 29.
《혈룡기》 제7화 – 빙심의 문, 금강의 숨결 ──몸은 얼어붙었지만, 심장은 깨어났다. “넌 이 문을 열 자격이 없다.”비석은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비석엔 글씨 하나.[血爲鍵, 念爲鎖]피가 열쇠요, 마음이 자물쇠다.그는 손가락을 베어피를 그 문 위에 문질렀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나는 누구인가.’ 그러자──지하에서 바람이 일었다.불이 없는데도,동굴 안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문이 열렸다.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한 걸음, 또 한 걸음.무린은 맨몸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몸이 얼었다.피부가 갈라졌다.숨이 텁텁하게 엉겨 붙었다.그런데도──그는 멈추지 않았다.이건 단지 무공서가 아니다.이건, 나를 증명하는 마지막 길이다. 그 중심에,**빙정석(氷晶石)**이 떠 있었다.그 속에 새겨진 한 권의 책.표지는 검고,글씨는 서릿발 같았.. 2025. 9. 29.
[외전] 화란 – 붉게 피어난 독화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그리고 화란의 눈에도… 감정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무림맹의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아래엔 천무린과 청류.두 사람은 나란히 검을 쥐고 있었다.서로를 향해 웃으며,한 치의 거리 없이 마주 서 있었다.그 장면은──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검을 그렇게 가까이 겨누면… 숨결까지 닿지."화란은 중얼이며 술잔을 비웠다.하지만 쓴 건 술이 아니라,씹히지 않은 질투였다.그녀는 참으려 했다.애써 웃으려 했다.그저 흔한 장면이라고,그가 나를 안았던 밤을 기억하자고,마음을 되뇌었다.하지만──그녀는 ‘한 번’ 키스를 받았고,청류는 매일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밤.화란은 검은 옷을 걸치고,무림맹의 무고한 사제 하나를 끌어냈다.“……화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