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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43

《혈룡기》 제9화 – 불꽃과 얼음, 첫 대치 ──매혹의 칼날은, 검보다 날카롭다. 무림맹 안의 뒷뜰.달빛 아래, 향나무가 짙게 풍겼다.그곳에,화란이 서 있었다.붉은색 옷자락은 바람에 흩날리고,그녀의 어깨 너머엔은은하게 열꽃 문양이 살아 숨 쉬었다.그리고──그 앞에 청류가 나타났다.푸른 옷에 단정한 검.차가운 눈매는 밤빛에 더 선명했다. “네가 먼저 왔네, 청류.”“널 기다린 건 아니야.”화란은 웃었다.그 웃음엔,날카로운 독이 숨어 있었다.“무린에게… 향수 뿌렸지?”“……무슨 말이지?”“그 애가, 오늘 아침 내 방을 지나쳤을 때그 몸에서 너의 향기가 났어.” 청류는 잠시 숨을 멈췄다.그녀는 전날 밤,무린의 검 손질을 도와줬다.살결이 닿았고,그의 눈빛이 흔들렸고──그리고…짧은 순간이지만,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너무 귀를 기울이는군.”.. 2025. 9. 29.
《혈룡기》 제8화 – 대련, 검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검을 들고 처음으로, 너를 마주 본다. 무림맹 본관 뒷편의 청운장.맹주의 직계 제자들과정파 문파의 차세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오늘은 공식 대련일.승부보단 경쟁의 줄 세우기,무공보다 정치적 인맥을 시험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무림맹 연무장 한편에 낯선 검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머리는 풀어헤쳐졌고,흰 도포 아래 검은 무명복을 입었다.낯선 얼굴.낯선 기운.하지만, 시선은 선명했다.“누구지 저 자는?”“명부엔 없는데…” 맹주가 나서기 전에,한 여인이 먼저 나섰다.청류.푸른 인장을 단 그녀는검을 꺼내들며 말한다.“초대받지 않은 이라면,검으로 증명하라.”그녀의 눈은 차갑지만,그 안엔 분명한 기억이 있었다.하인의 옷을 입고 나를 보던 그 눈동자.그리고 지금──그가 다시 나타났다. “검을 받아라, 무명객.. 2025. 9. 29.
《혈룡기》 제7화 – 빙심의 문, 금강의 숨결 ──몸은 얼어붙었지만, 심장은 깨어났다. “넌 이 문을 열 자격이 없다.”비석은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무린은 대답하지 않았다.비석엔 글씨 하나.[血爲鍵, 念爲鎖]피가 열쇠요, 마음이 자물쇠다.그는 손가락을 베어피를 그 문 위에 문질렀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나는 누구인가.’ 그러자──지하에서 바람이 일었다.불이 없는데도,동굴 안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문이 열렸다.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한 걸음, 또 한 걸음.무린은 맨몸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몸이 얼었다.피부가 갈라졌다.숨이 텁텁하게 엉겨 붙었다.그런데도──그는 멈추지 않았다.이건 단지 무공서가 아니다.이건, 나를 증명하는 마지막 길이다. 그 중심에,**빙정석(氷晶石)**이 떠 있었다.그 속에 새겨진 한 권의 책.표지는 검고,글씨는 서릿발 같았.. 2025. 9. 29.
[외전] 화란 – 붉게 피어난 독화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이 없었다.그리고 화란의 눈에도… 감정은 없었다.그녀는 조용히,무림맹의 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아래엔 천무린과 청류.두 사람은 나란히 검을 쥐고 있었다.서로를 향해 웃으며,한 치의 거리 없이 마주 서 있었다.그 장면은──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검을 그렇게 가까이 겨누면… 숨결까지 닿지."화란은 중얼이며 술잔을 비웠다.하지만 쓴 건 술이 아니라,씹히지 않은 질투였다.그녀는 참으려 했다.애써 웃으려 했다.그저 흔한 장면이라고,그가 나를 안았던 밤을 기억하자고,마음을 되뇌었다.하지만──그녀는 ‘한 번’ 키스를 받았고,청류는 매일 그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밤.화란은 검은 옷을 걸치고,무림맹의 무고한 사제 하나를 끌어냈다.“……화란님, 무슨 일이십니까.”“.. 2025. 9. 29.
[화란 외전] 입맞춤 뒤, 남은 온도 ──키스는 짧았다. 하지만 지금도 떨리고 있다. …심장이, 이상해.분명 나는 그를 유혹하러 간 거였어.죽여도 좋다고, 안겨도 좋다고,그렇게 스스로를 내던졌을 뿐인데──그가 나를 안았다.그리고… 입을 맞췄다. 짧았지.정말… 짧았어.하지만 너무 깊었어.내 혀가 닿지도 않았는데,내 안쪽까지 전부 다 흔들려 버렸어. 그의 손,차가웠는데…그 순간만큼은 불 같았어.어깨를 감싸던 그 손,가슴에 닿은 그 숨결,그리고 내 입술 위로 무겁게 내려앉던 그 사람의 침묵──…나를 안아도 돼. 대신 이름은 부르지 마. 그랬던 내가…지금은 그의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부르고 있어.무린.무린.무린… 입에 담을수록숨이 가빠져. 그 남자…참 나빠.날 안고도,아무 말도 안 했어.내게 입 맞추고도,다시 날 멀리 두려고 해.그 눈빛…날 안.. 2025. 9. 29.
《혈룡기》 제6화 – 사파의 붉은 꽃 ──질투는 독이다. 하지만 달콤하다. 달빛은 흐렸고, 바람은 뜨거웠다.무림맹 연회가 끝난 지 사흘째 되는 밤.천무린은 산 속 폐관에 머물고 있었다.외부와 단절된 곳.숨은 고수를 찾기 위함도, 수련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그는 단지 피하고 싶었다.청류의 눈.그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냉정하고, 맑고,하지만 어딘가 갈라져 있던 시선.그 시선이…그의 심장을 스친 후부터, 무언가 흔들리기 시작했었다. 그러나,그가 머물고 있는 산장에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나뭇잎을 스치는 가벼운 발소리.향긋한 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그리고… 화란. 그녀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열쇠도 필요 없었다.이 남자가 문을 잠글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방 안에는 불빛 하나,그 빛 아래 앉아 있던 무린의 등 뒤에 그녀는 서.. 2025.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