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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

《혈룡기》 제6화 – 사파의 붉은 꽃

by WhateverYouDo 2025. 9. 29.

 

──질투는 독이다. 하지만 달콤하다.

 

달빛은 흐렸고, 바람은 뜨거웠다.
무림맹 연회가 끝난 지 사흘째 되는 밤.
천무린은 산 속 폐관에 머물고 있었다.

외부와 단절된 곳.
숨은 고수를 찾기 위함도, 수련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피하고 싶었다.

청류의 눈.
그 눈빛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냉정하고, 맑고,
하지만 어딘가 갈라져 있던 시선.

그 시선이…
그의 심장을 스친 후부터, 무언가 흔들리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가 머물고 있는 산장에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

나뭇잎을 스치는 가벼운 발소리.
향긋한 바람에 실려오는 꽃내음.
그리고… 화란.

 

그녀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
열쇠도 필요 없었다.
이 남자가 문을 잠글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방 안에는 불빛 하나,
그 빛 아래 앉아 있던 무린의 등 뒤에 그녀는 서 있었다.

“왜.”

무린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화란은 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그 여자.
눈이 참 예쁘더라.”

“누구 얘긴지 모른다.”

“정말?”

화란은 웃었다.
그 웃음은 차분했지만,
눈동자 속엔 맹수의 빛이 서려 있었다.

“하긴. 넌 날 볼 때도, 그런 눈으로 본 적 없지.”

 

그녀는 그의 앞에 앉았다.
오늘 그녀는 짙은 남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살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신 눈빛과 손끝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룻밤만 줘.”

“…뭐?”

“기억으로라도 남고 싶어.
네가 다른 여자 눈빛을 기억하기 전에.”

무린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이미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피부가 닿았다.
열이 전해졌다.
화란의 손이 그의 뺨에 닿았다.

“화란.”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날 유혹하지 않는 남자를 처음 봤어.
그게…
가끔은 치욕처럼 느껴져.”

그녀의 입술이 그의 목선 가까이에 멈췄다.

“나를 원하지 않는 거야?
아니면…
너무 원해서, 도망치는 거야?”

 

무린은 그녀를 밀치지 않았다.
하지만 안지도 않았다.

그건 오히려 더 잔혹한 태도였다.

화란의 눈동자에 젖은 빛이 번졌다.
그녀는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그녀는 천천히 허리끈을 풀었다.
천이 흘러내렸다.
어깨가 드러났다.
하얀 피부 위에, 붉은 사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 밤…
날 안아도 좋아.
그 대신,
내 이름은 부르지 마.”

 

침묵.

무린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은 그녀의 어깨를 덮고,
조용히 천을 다시 올렸다.

“네 이름을…
부를 자신이 없다.”

화란은 그 말에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 말은,
거절이 아니라 무너짐에 가까웠다.

 

그녀는 다시 무릎 위에서 내려왔다.
잠시,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서기 직전,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

그 말은 낮았지만,
그 어떤 유혹보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입술이 다시 닿았다.

이번엔…
피부 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
진짜 입맞춤.

짧고,
무겁고,
서툴렀지만,
명확한 ‘의지’가 담긴 입맞춤이었다.

 

화란은 눈을 감은 채 속삭였다.

“…이런 키스는 처음이야.”

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안고 있었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그리고 그 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서로를 이미 기억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