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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

《혈룡기》 제25화 – 떠나는 길, 찾는 길

by WhateverYouDo 2025. 12. 15.

쇠에 묶인 세상을 풀기 위해, 두 사람은 다시 길에 올랐다.

 

무림맹 장로회의 파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찬성과 반대, 반역과 지지.
무린은 맹주를 자처하며 서 있었지만,
그 발밑은 이미 피와 서리, 불길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알았다.
이곳에서 더 버티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힘을 더 갈아올려야 했다.
쇠를 부술 수 있는, 압도적인 힘.

 

밤.
무린과 화란은 몰래 무림맹을 빠져나왔다.
달빛조차 흐려, 두 사람의 그림자는 희미했다.

“정말 가는 거야?”
화란이 물었다.
그녀의 음성은 낮지만, 내심 설렘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납혈진을 완전히 무너뜨릴 방법을 찾으려면…
다시 기연을 찾아야 한다.”

 

화란은 그를 곁눈질했다.
그의 옷자락은 아직도 피로 젖어 있었고,
손끝의 서리는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이 사내… 쇠를 부수겠다고 맹세했지.
그 맹세를 끝까지 따라가려면,
나도 불길을 더 세게 태워야 해.’

 

길은 산맥으로 이어졌다.
낡은 전서(典書)에 기록된 고대의 봉인 동굴.
그곳엔 오래전 무림을 뒤흔든 ‘심쇄(心鎖)’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전해졌다.

“심쇄를 풀 방법…”
무린은 낮게 중얼거렸다.
“안쇄는 흔들 수 있었지만,
심장이 묶이면 청류는 완전히 죽어버릴 거야.”

화란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걱정 마.
네 심장이 얼지 않게, 내가 불을 더해줄 테니까.”

 

동굴에 도착했을 때, 바람은 이미 차가웠다.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피비린내와 얼음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무린이 손바닥을 대자,
바위가 스스로 갈라지며 통로를 드러냈다.
그 안엔 오래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건 납혈진과 닮으면서도 달랐다.
피 대신, 심장을 상징하는 문양.

화란이 숨을 들이켰다.
“이게… 심쇄의 근원?”

무린은 걸음을 옮겼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얼음으로 된 연못이 나타났다.
그 위엔 불길처럼 흔들리는 푸른 불꽃 하나가 타고 있었다.

그는 곧장 알아차렸다.
“심빙화염(心氷火焰)…!”
얼음과 불, 양극의 힘이 동시에 깃든 불꽃.
이것이야말로 심쇄를 풀 열쇠였다.

 

그러나 다가가려는 순간,
연못 위에 검은 그림자가 일어났다.
형체 없는 수호령.
심쇄를 지키는 망령이었다.

무린은 검을 움켜쥐었다.
빙기가 터져 나왔지만,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화란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내가 앞장설 차례야.”

그녀의 불길이 온 동굴을 채웠다.
망령의 그림자를 태우며 길을 열었다.

무린은 그 틈을 타 연못 위로 손을 뻗었다.
불꽃이 그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차갑고, 뜨겁고, 무겁게.
심장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 순간, 그는 비명을 삼켰다.
심장이 얼어붙으면서 동시에 타올라,
몸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그러나 그는 버텼다.
버틸 수 있었던 건,
곁에서 화란이 그의 손을 꽉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란의 속삭임이 귀에 스며들었다.
“견뎌.
너는 나와 함께 있어.
나는 널 놓지 않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연못 위의 불꽃은 사라지고,
무린의 가슴에서 새로운 기운이 피어났다.

심장이 얼음처럼 단단해졌지만,
그 중심에는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자리 잡고 있었다.

“심쇄를 부술 힘…”
그는 숨을 내뱉었다.
“이제, 찾았다.”

 

화란은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속삭였다.
“이제 네 심장은 내 불과 하나가 된 거야.”
그녀의 입술이 그의 턱을 스쳤다.
“그러니 잊지 마.
네가 누구를 안고 있는지.”

무린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전쟁도 쇄도 잊은 듯,
그녀의 체온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동굴에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심쇄를 풀 실마리.
그러나 그 대가는,
서로의 운명을 더욱 깊이 묶는 불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