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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헙

《혈룡기》 제26화 – 정파의 칼날, 그림자의 후원

by WhateverYouDo 2025. 12. 15.

 

검보다 날카로운 것은 정치였다.

 

무림맹의 아침은 늘 종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즘의 종은 기도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울렸다.

장로회가 갈라진 지 사흘.
찬성과 반대, 지지와 탄핵.
맹 안팎의 무인들은 서로 다른 깃발 아래 모여 웅성거렸다.

 

그날, 장로회 별당에서는 비밀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
반(反)무린을 외친 장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이 닫히자 곧장 불빛이 흔들렸다.

“천무린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첫째 장로가 단호히 말했다.
“납혈진이 흔들렸을 때 그가 있었다.
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만으로도 그는 맹을 위협한 반역자다.”

둘째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는 맹주를 자처했지 않은가.
이건 도전이 아니라 반란이오.
우리가 가만두면 무림의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진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낯설지 않은, 그러나 감히 공개석상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

“그러니… 나의 힘이 필요한 게 아니겠소?”

풍백현이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장로들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풍백현, 그대가 감히 이 자리에…”
누군가 항의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풍백현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그 항의보다 훨씬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풍백현이 낮게 말했다.
“무린은 쇄를 부수겠다고 한다.
그는 틀림없이 언젠가 납혈진을 완전히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무림맹 전체가 붕괴한다.
그 전에, 그 불씨를 잘라내야 하지 않겠소?”

셋째 장로가 물었다.
“대신… 무엇을 원하는가?”

풍백현은 잔을 들어 올렸다.
붉은 액체가 흔들렸다.
“내 쇠를 지키기 위한 자리를 원할 뿐.”

 

회합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결론은 명확했다.
반무린 세력은 풍백현과 손을 잡았다.
그의 무공, 그의 병력을 빌려
무린을 억누르기로 한 것이다.

 

며칠 뒤,
무린과 화란은 산 속에서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심빙화염을 흡수한 뒤,
무린의 기운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 아래서 갑자기 북소리가 울렸다.
정파 무인 수십 명이 깃발을 들고 올라왔다.
그 깃발엔 ‘정의’ 두 글자가 선명했다.

 

앞장선 이는 장로회의 사자였다.
그는 무린을 향해 외쳤다.
“천무린!
장로회의 명에 따라, 그대를 탄핵한다!
당장 무림맹으로 출두하여 죄를 밝혀라!”

화란이 앞에 서며 불길을 일으켰다.
“탄핵? 죄?
그가 납혈진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너희는 이미 풍백현의 쇠에 목이 매달렸을 거야!”

무린은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게, 그러나 깊은 불길로 타올랐다.

“내 죄를 묻겠다고?
좋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묻겠다.”
그는 낮게 울부짖었다.
“너희는 무림의 장로인가,
아니면 풍백현의 족쇄인가?”

 

순간, 무인들의 발밑에 서리가 피어올랐다.
그 위로 화란의 불길이 타올랐다.
얼음과 불.
두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산을 진동시켰다.

사자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항하면, 반역자로 간주한다!”
창끝이 일제히 무린을 겨눴다.

무린은 이제 단순히 풍백현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의 ‘질서’ 자체와 충돌하고 있었다.
정치의 칼날은 이미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